몇년 전부터 한국말이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돼서 옛날에는 길에서 한국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못 들었는데 어느 순간 아무 부담없이 내 귀에 들어오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몰래 엿듣는 저속한 취미는 없지만 한국사람들은 대체로 큰 목소리를 내며 이야기하니까 듣기 싫어도 제멋대로 귀에 '슝슝'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외국인의) 경우 한 사람이 하는 한국말을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도 못하기 때문에 똑바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딴 생각을 하고 있어도 한 번 큰 소리로 한국말이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끝까지 내용을 파악하려고 전신경을 귀에 집중해버린다.
특히 한 쪽말밖에 들을 수 없는 휴대폰통화의 경우는 더 그렇다.
버스에서 자다가 살짝 깨서 어디쯤 왔는지 궁금해하는 순간~
'지금 뱅뱅사거리거든. 좀 있으면 간다. 한 25분쯤 걸릴걸'
(아~ 아직 뱅뱅사거리네~ 아직 25분 더 자도 되겠다ㅋ 아저씨 쌩유~)
방금 이사한 듯 기쁜 아줌마. 연속 다섯명의 친구와 통화중.
'어! 나 이사했어... 분당으로... 어 거기 옆 ㅇㅇ아파트야... 좁아~ 36평밖에 안돼^^'
(헐~ 36평이 좁다니ㅠㅠ 36평이면 운동장일텐데... 너무 겸손하시네~)
그리고 퇴근시간이라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
'아빠는 집에 왔어? 할머니는? 민정이는(아마 딸) 뭐해? 엄마 금방갈께~'
(아~ 딸이름은 민정이구나~ 아빠는 바쁜 회사원이고 엄마는 칼퇴근이네ㅋ)
심지어 지하철에서 주민등록번호까지 불러주는 사람도 봤다ㅎㄷㄷ
'받아적어~ 660525 - 삐삐삐삐삐삐삐'
(설마 나보고 받아적으라는 건 아니겠지? 완전 개인정보 유출킹이네ㅋ)
단순한 전화 내용으로 그 사람이 어디에 살고, 식구가 몇 명이고, 딸 이름은 뭐고, 어떤 집에 살고, 몇시에 집에 가고, 몇시에 밥은 먹고 등등 그 사람의 중요한 부분을 다 알 수 있다. '다들 그렇게 큰소리로 이야기해도 괞찮을라나~?' 내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이런게 물론 훌륭한 한국어 리스닝 연습이 되기는 하지만...
무조건 좋다는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 내 귀를 막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 통화는 보통 화장실 안에서 이루어진다. 게다가 점심 시간 막판에.
여친 : ('자기야' 가 아니고 아주 차갑고 까칠한 목소리로) 일어났어?
남친 : 안들림ㅋ 아마 기가 죽어서 '어' 정도~
여친 : (여전히 차갑고 까칠한 목소리로) 어제밤에 핸드폰 왜 꺼놨어?
남친 : 역시 안들림ㅋ 아마 '밧데리가 나갔다?' 정도~
여자 : 왜 회식만 하면 밧데리가 나가? 계속 그렇게 살거야?!?! 헤어져~'
그담부터는 남자의 변명이 시작되었지만 계속 한숨만 그리고 아무 말없이 툭...
통화 종료 후 조용히 울기 시작ㅠㅠ
지금 나가면 분명히 그녀가 창피하니까 나는 조용히 앉아서 아무말없이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의 슬픔을 나누고 속으로 위로해준다.
(잘 헤어졌어요~ 한번은 용서해주지만 회식때마다는 너무하네요~ 잊어버려요 그냥)
몇분 후...
회사건물의 화장실이라서 나올 때는 똑바로 물도 내리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와야한다. 거울 앞에서 화장도 고쳐야 되고....불쌍해ㅠㅠ
여러 이야기가 들려서 한국어 리스닝 연습이 되는 것은 아주아주 좋은 점이지만...
가끔 너무 개인적인 부분까지 들려서 가끔씩은 나 스스로 실례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떡해~ 들리는걸ㅠㅠ 오늘은 나에게 또 어떤 이야기가 들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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